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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하거나 기도를 할 때 임대와 능력을 구하면서도 성령님이 그냥 안개처럼만 느껴지고 했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은 딱 와 닿지만 무지함에 성령님을 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과 소통하고 싶고 나도 하나님이 이야기하시는 음성을 듣고 판단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었다. 오랫동안 집에 있었음에도 인제야 생각나게 된 '하나님의 임재 연습'과 '안녕하세요 성령님'... 인제야 이 책들을 집어들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대학에 들어와 약 2년 동안 내리 나를 억누르든 문제에서 빠져나오려 씨름하든 중 하나님은 나에게 인격적인 하나님을 점차 알려주셨었다. 종종 상처를 억누르고 버림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괜찮은 척하는... 일명 비위 맞추기 식의 신앙생활에 눌리곤 하던 나를 괜찮다고, 난 너의 아버지라고, 아프면 아프다고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게 첫 번째였다. 암 덩어리 같던 내 숨겨진 쓴뿌리를  뽑아내려 땅을 갈아엎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다음은 조금 힘들었었다. 사실 많이 힘들었었다. 고름을 짜내는 것처럼 부풀어 오른 내 상처를 터지도록 건드셨다. 일단 하나님께 아프다고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자 많은 원망이, 미움이.. 많은 낙심이 모두 끝없이 차오르는 늪처럼 부풀어 올라 흘러내렸다. 그중에서 하나님께서 줄기차게 물어왔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던 질문들... '하나님은 왜 이제 와서 이걸 건드시나요?' '나 건강한데, 그냥 잊게 하시지 왜 이 상처를 굳이 건드세요.' '지옥 갈 걱정 아니면 하나님 안 믿었어요. 왜 날 괴롭히는 거에요'
    ' 내 꿈도 내 젊음도 내 시간 모든 것을 드린다고 했잖아요. 난 드릴대로 드렸는데 왜 이 뭉텅이마저 건들려고 하세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실까, 사울처럼 버림받을까 하는 걱정에 굴욕적으로 그 뭉텅이를 드리겠다가 약속했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계속해서 다시 돌려주시는 느낌이 들 정도로 끝까지 그 뭉텅이를 건드셨다. 왜 항복한다고 했음에도 나를 괴롭히셨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것이었던 것 같다. 나의 성령님 말이다.
    굴욕적인 항복이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상처를 보여 드리는 것... 그래서 내가 자유로울 때까지 그 뭉텅이를 계속해서 나에게 쥐여주셔 던 것 같다. 
    단기선교 기간 중 믿음의 통역자인 언니를 통해 울며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셨던 성령님. 그것을 시작으로 성령님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던 것 같다. 모든 영혼을 사랑하시되 한 영혼을 세상에 하나뿐이듯 사랑하시는 하나님. 다른 영혼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는 것이 전도가 아니라 내 삶에 하나님과의 동행을 주시기 위해 전도라는 것을 주셨다던 하나님. 상처보다 치료하는 과정이 더 아팠던, 사역 중 손가락에 난 깊게 팬 상처에 새 살리 돋고 지문이 생기듯 하나님은 먼지를 걷어내시고 날 지으신 처음의 목적으로 날 고쳐놓으셨다. 성령님과 교제하는 삶으로 말이다. 물론 지금도 더욱더욱 건강해지고 있고...
    이 책은 날 똑 닮은 책이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고 해야 하나? 성령님께 상처를 주는 일은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내용에 그간 잘못했던 것들이 떠올라 두려웠는데 곧바로 성령님의 뜻을 거스를까 걱정하는 것 자체가 동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성령을 받은 것인지, 교제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들에 '모든 것에 감사하다'라고 기도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라고 하는 것도 성령님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오늘 기도하지 않았다고, 성경 읽지 않았다고 알려주는 작은 목소리도 모두 성령님이셨다는 것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할 때 이미 날 위한 준비를 마치고 계셨다는 것도...많은 것을 깨닫고 평안해졌다.  
    가장 친한 친구가 되시고 부모님께서 되시고 내가 근심할 때에 나보다 더 아파하셨을 하나님...원망하며 하나님을 아프게 하고 싶어 일부러 휘둘렀던 내 창에 푹푹 찔리시면서도 끝까지 날 버리지 않으신, 밀어내면서도 잡아주길 바랐던 내 어리광 다 받아주셨던 나의 성령님, 나의 하나님... 너무나 섬세해서 그렇게 쉽게 상처를 받으시면서도 나를, 온 세상의 이들을 두 손에 꼭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
    어렸을 땐 사랑이 곧 좋아하는 마음이라 생각했었다. 마냥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마음.
    하지만 커가면서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  의미는 알면 알수록 다르고 그러면서도 더 진하다.
    사랑은 단순히 좋은 감정을 넘어 대신 아프겠다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은 날 사랑하여 매일 아프시다...
    지난 어떤 묵상 책에선 이게 그다지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슬픈 의미라고 말했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번 일을 통해 느낀 건, 그 사랑은 슬프다기보단 표현할 수 없이 크고 진하단 느낌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찬양에 기쁜 의미가 있을 수 없었겠지...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여러 빛깔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수식어가 있다면 '진하다'라는 표현일 것이다.
    이 책에선 성령님께 말을 걸어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도 나 때문에 근심하실 성령님께 사실 평생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그나마 근심을 덜 끼치는 것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온 힘을 다해 사랑한다 하고 싶다.
    그 분의 방식처럼 진하게 때론 기쁘게 때론  잠잠하게...
    매일의 일과가 점차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가까워지길 소망한다.
    하나님 밖에, 그 완전하신 사랑밖엔 더 값진 게 없단 걸 알아가는 것.
    성령님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것.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사랑 밖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엘리샤의 하나님. 당신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만져지지 않아도 사랑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끝없이 온몸으로 고백하는 것밖에 없지만
    이것이 당신을 조금이라도 기쁘시게 한다면
    영원히 그 사랑만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사랑해요 성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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