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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넛지"라는 단어가 보였을 때 공공정책 입안자의 시선일 거라 예상은 했었는데 끝까지 읽어보니 역시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법조인의 시각이기도 하다. 책이 얇아 쉽게 읽을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그렇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몇 가지 되지 않으며 그걸 책 한 권으로 만들려고 뻥튀기한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이 가장 정리가 잘 된 곳은 오히려 말미에 등장하는 해제 부분이다. 나머지 부분은 실제 사건이나 실명이라도 실었다가 혹여 당할지도 모르는 소송이라도 의식했는지 애매한 사례들만 동원하여 설명하는 데 힘을 쏟은 느낌이다.


    이 책애서 말하는 루머 메커니즘의 가장 간단한 골격은 정보 / 사회적 폭포현상과 집단 극단화 이렇게 두 가지이다. 전자나 후자 모두 군중심리에서 다루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전자의 개념은 주변에 의해 휩쓸려감을 의미하는데 후자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특이한 개념이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주제에 대해 토론할수록 한쪽으로 강하게 쏠린다는 것이다. 과격하게 갈 수도 있고 무대응으로 갈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대세인 의견에 힘이 몰린다 보면 된다. 뭐 이런 현상 또한 군중심리의 특징이긴 하니 그다지 특이할 것은 없겠다.

    루머의 발생적 측면과 이후의 대처 방법 그리고 억제책 등에 대해 논했는데 사실상 나에게 도움이 되는 항목은 없었다. 루머의 발생적 측면은 이미 다른 심리학 서적들에서 신물나게 다루었다. 비합리성을 다룬 항목들이기에 진화심리학, 생물학, 생리학, 뇌과학적 관점에서 더 자세하게 나온 것들이 많다. 그래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루머의 속성에 관한 내용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루머 대처 방법은 어떠한가? 어차피 한 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고정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구체적 반론조차도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더 고착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기 달성적 에언, 불인정 편향, 편향 동화, 인지적 부조화 등 여러 단어로 표현하지만 미묘한 어감의 차이만 있을 뿐 믿을 놈은 계속 믿는다는 결론만 보강하는 재료들에 불과하다. 다만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그것도 유명한 사람일 경우)이 다른 의견을 지지할 때 무조건적인 확신이 조금은 완화될 수는 있다. 또한 무분별한 생각의 난립을 막기 위해 위축효과라는 것을 노릴 수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지만 결국 저자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어느 수준에서 균형을 맞추자는 중립적 입장밖에 없다.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 사이 그 어딘가의 균형점을 추구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법학을 기반으로 말하는 만큼 판결을 분석하고 거기에 의존해 루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어째 영 시원찮다. 과실과 부주의의 차이에 대해 논하고 과실에 대해서는 선처를, 부주의한 무관심에 대해서는 징계를 하자는데 피해자가 공인인 경우는 이마저도 적용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상황과 연계시킬 때 시사하는 바가 있긴 하지만 결국 법의 집행과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 책은 도움이 안 된다. 그저 미국에서 루머에 대처하는 법적 방식들이 어떤 논쟁점을 거쳤고 어떤 판례들을 통해 형성되어 왔나 정도만 이해가 가능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루머를 통제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더 퍼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악성 루머를 퍼뜨려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과 상품에 대한 홍보용 루트를 찾고 싶은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는 오바마 진영 정책 입안자의 입장에서 악성 루머의 억제책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상업적으로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차라리 다른 책을 봐야겠다. 책은 얇은데 괜히 양장본으로 만들고 가격만 올려놨는데 막상 읽어보니 크게 얻을만한 건더기도 없다.

    핵심 요약 : 정책자 입장에서 필요한 악성 루머 대처법

    p.s
    1. 이 책에서 나오는 논리는 정부에서 이용하기 딱 좋을 것 같다. 문제는 같은 상황을 미국과 한국이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1960년대 초에 민권운동가들이 시위를 할 때 경찰이 폭력 대응했다고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냈는데 이때 경찰 지휘권을 갖고 있던 몽고메리 시 경찰청장 설리번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연방대법원은 공직자가 관련된 경우 헌법은 말을 한 사람이 '실질적인 악의 actual malice'를 갖고 있는 경우에 한해 권리회복 조치를 허용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판결로 인해 언론의 자유가 한층 강화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는데 한동안 이를 잘 따르던 한국이 요즘은 오히려 50년 전으로 퇴보한 것 같다. 물론 법이 바뀌진 않았다. 오직 법을 다루는 주체들이 바뀌었을 뿐인데도 그러하다.

    2. 이 책에서 등장한 용어들은 정리해두면 쓸 만할 것 같다. 영문과 병기된 용어들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적 폭포효과 - social cascades
    집단 극단화 - group polarization
    위축효과 - chilling effect
    성적 예언 - self fulfilling prophecies
    편향 동화 - biased assimilation
    편향 오류 제거 - debiasing
    인지적 부조화 - cognitive dissonance
    수용 문턱 - thresholds
    수용자 집단 - receptives
    중립 집단​ - neutrals
    회의적인 집단 - skeptics
    티핑 포인트 - tipping point
    사회적 수렴현상 - social convergence
    지식 위증 - knowledge falsification
    사회적인 제재 - social sanctions
    모험 이행 - risky shift
    신중한 이행 - cautious shift
    편향 동화 - biased assimilation
    불안정 편향 - disconfirmation bias
    실질적인 악의 - actual malice
    부주의한 무관심 - reckless indifference
    사실적 오류 - factual error
    명예훼손적인 내용 - defamatory content​
    엄격한 책임주의 - strict liablity
    무과실 책임주의 - liablity without fault
    과실죄 - negligence
    과실 - neg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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