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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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이 넘도록 손 떼지 못하고 있다. 아직 까지 반납을 못 했다. 겨우 이삼일 동안 짬 시간을 내며 읽었을 뿐이지만 그냥 헤집고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좀 구색을 갖춘 서평을 써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잘해 보고 싶을수록 일은 풀리지 않는 법인가. 두 번의 시도는 짜증으로 마감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책 읽기마저 권태롭기 짝이 없는 쓸모없는 습관이라 느껴졌다. 이내 마음을 세탁하고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자가 쓴 신문에 실린 서평에 대한 단상:
'명시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규약이 있다는 의혹(?)이 들 만큼 동형을 보인다. 이러저러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러저러한 면에서 탁월하고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으며 이러저러한 면에서 미흡하더라. 그건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책을 간단히 홍보하는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배후에는 기만이 가로누워 있다는 판단이 든다. 과연 이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서 소개하는 것인가. 그 지순하고 객관적인 입장이란! (더욱이 웃긴 것은 신문에 나온 서평을 그대로 옮겨와 권위를 등에 업어 책을 팔아 보려는 출판사의 눈물겨운 생존전략이다.) 수구 보수 일색이라는 심히 위험한 작태를 제어 놓더라도 서평에서조차 밥 먹듯 사기를 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본 바 있어 딴죽을 걸어보았다. 자발적인 복종심이 자라날 만큼 훌륭한 서평을 보고 싶다.
이 책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정치학 석사 학위 논문답게 여러 번 명시적으로 그 요지를 밝혀주고 있다. 그중 p78의 것을 옮긴다.)
1. 학생운동 주체는 민중적이고 집단적인 민주적 가치를 지향했고 이는 상상이 된 민중공동체로 구체화 되었다.
2. 이러한 공동체를 둘러싸고 엘리트는 운동의 지식, 가치, 문화를 통해 대중을 규율화시키고, 공식조직으로서의 학생회를 유지함으로써 학생운동 정치를 '대중 정치'가 아닌 '제도화된 정치'로 전락시켰다. 반면 대중은 민주적인 가치의 기반으로 운동문화를 인정했지만, 운동 엘리트의 대중에 의한 규율화 경향에 대해 비공식적인 저항과 불만을 지닌 채 자신들의 일상에 근거한 민주적 가치를 유지하려고 했다.
3. 공동체를 둘러싼 내부 갈등에도, 80년대 학생운동에서 대중저항의 물질적인 기반은 급진적 이데올로기나 80년대의 파시즘적 억압 조건 때문만이 아닌 학생들이 발명한 상상이 된 민중공동체와 운동문화로서의 하위문화이다.
기존의 연구를 훑어 본 바 없지만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탁월하다는 판단은 학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내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주름 즉, 대학 내 문화적 자장에 대한 사실적인 분석에서 오는 감동 때문이었다. 대학물 먹은 사람치고 운동권이라는 문화적 자장에서 아주 자유로운 사람이 있던가! 그 힘들을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의 흔적 속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80년대를 살았던 한 대학생의 치열한 모색은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비록 잊힌 것들을 말해야 하는 씁쓸한 뒷맛을 삼킬지라도. 나에게 중요한 건 그 문화적 자장을 삐딱한 눈빛으로 본 다음에 '자아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일 게다.
손호철 씨가 꼬리말에서 지적한 바로는 이 책은 '대중 정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한단다. 학생운동 정치가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학생 대중 규율화 했다는 논지를 전개하려고 잠시 끌어들인 바 있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들뢰즈와 가따리를 생각해 본다. 대중의 자발성을 믿고 그 생성하는 힘에 주목하라고? 좋다. 욕망이라는 지평을 통해 사고하고 기존의 마르크스와 근대 정치의 문제설정을 뛰어넘자고? 말은 참 좋다.
서사연(서울사회과학 연구소)의 필자들의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할까? 그럴 수 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앎의 식민 성이라는 측면에서 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굳이 앎의 시민성 따위를 들이밀지 않아도 인구에 회자하는 '이론과 실천'이라는 상투적인 어휘에 넌덜머리가 나는 바이다. 이번 '高 大文 化'를 펴 보니 학내 진보이론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Beyond Marx"를 외치는 서하연 필자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물론 밑줄 쫙 그어가며 어떻게 해 치울 수야 있겠지만 난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고대 문화는 며칠 가방에 쑤셔 넣고 다니다가 책장으로 버린 지 오래다.
마치기 전 이 책을 읽다가 등허리에 소름이 몇 번 돋았음을 고백한다. 무력하기 짝이 없고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방구석에서 활자에 함몰되기로 작정한 듯이 흘러가는 내 일상을 치워 버리고 싶었다. 그들의 광기와 환희에 몸담고 싶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한판의 살풀이인지도 모르겠다. "Shine on my crazy diam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