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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내 필력이 내 생각을 남에게 온전히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TV나 영화와는 달리 책에는 독자의 생각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런 데에서 오는 일종의 무거움을 가볍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독서란 책을 통해 자기 생각들이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이고 그런 과정을 거쳐 이전과는 -조금이라도-달라진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타인이 어떤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 그에게 필요한 마음의 양식이 무엇인지, 취향이 어떤지를 알지 못한 상태로 무작정 내가  좋아하는 책을 권하거나 혹은 권하지 않기는 어렵다.
    이 점은 이렇게 인터넷에 논평을 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내가 어떻게 글을 썼건 간에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얻으려 할 것이다. 추천/비추천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하나 읽지 말아야 하나를 목적으로 이 글을 읽을 것이고, 저자의 팬 혹은 거부는 이 글에서 우호적인 내용이나 비호감정인 내용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모든 면을 고려하고 글을 쓰기란, 가뭄에 콩 나듯 글을 쓰는 내게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으려는 차원에서 미리 말을 해두자면, 난 요즘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난 기본적으로 책을 거의 공부 수단으로 읽어왔기 때문에, 장르에 상관없이 뭔가 배울 거리가 있는 책을 선호한다.
    그런데 요즘 소설은 어떤 깨달음보다는 감성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인지 읽고 나도 기분만 묘할 뿐 딱히 얻는 것이 없었다. 물론 그런 소설 속에서도 자신을 발견하고 인생의 길을 배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기본적으로 그런 경우는 독자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결과이지 소설 자체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쓰이진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무라카미 하루기의 소설은 말이다.

    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무라카미 하루기의 소설에는 다른 주제성 문학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어떠한 적극성이 빠져 있는 게 특징이다. 소설속 주인공 자기 자신이나 개인 생활에서도 능동적/적극적인 자세는 빠져 있고, 그런 가운데에 내적 세계를 그려간다. 이러한 작가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얻는 감정은 밝고 에너지 가득한 그런 부류의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일종의 허무함-그리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에 더 가까운 그런 감정은 권장될 것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언제나 소설 속의 주인공은 어떻게든 잘 살아간다.)

    어쨌거나 무라카미 하루기는 대단히 글 쓰는 기술이 뛰어난 작가이고, 그의 기법은 번역된 문장을 통해서도 너무나 잘 전달된다. 유사한 일본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을 통틀어도 무라카미 하루기의 기법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야기의 재미라면 1Q84는 정말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다.

    그러나 냉정히 얘기해서 그 이상은 없다. '해변의 카프카',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에서 확인했던 무라카미 하루기의 문학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물론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면 다른 부분도 있지만 그러한 바뀐 부분보다는 변하지 않은 부분이 더 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Q84는 사랑 이야기이다. 작은 국민, 공기 번데기를 비롯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크고 작은 장치와 은유 가득한 것들이 많지만... 결국, 어디까지나 아 오마 메와 덴소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런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 딱히 그것들의 의미를 파고들고 싶지도 않다. 적어도 난 하루기 소설에 대한 폐인은 아니니까.

    1Q84는 읽는 내내 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의 발견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아 오마 메와 덴소의 여정을 좇고 싶은 마음과 호기심, 그것이 이야기 전개의 핵심이다. 그러나 독자가 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현실은 독자의 욕구를 가로막은 벽이 된다.

    지금 만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정열적인 섹스를 통해 서로 확인한다고 해도, 인생에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금 만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렇게 말한다고 한들, 확신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의문을 하나씩 던지면 끝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런 연속된 의문과 의심의 돌파구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방법은 없다. 현실은 그저 믿을 뿐이다. 믿으면서 자신을 다독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랑이 커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현실의 방법이다.

    1Q84 소설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아 오마 메와 데고는 만나지 못했지만 서로가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것으로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는 끝난 것이다. 현실에서는 확인하기 힘든 사랑을 이상 세계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 이게 1Q84의 이야기이다.

    여운이 많이 남긴 하지만 아름다운-비록 슬프지만- 이야기는 충분히 얻었다. 이 정도가 나머지 이야기를 내 상상력으로 채우는 즐거움이 딱 적당하지 않은가?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3권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서 더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즐거운 독자의 상상은 날아간 채  TV 유행 드라마의 가벼움만 남게 될 테니 말이다. 체호프의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말처럼 나머지 이야기의 해결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좋겠다.

    책을 덮고 나니 1Q84는 내게 네 세상의 달은 몇 개냐고 묻는다.
    수없이 많은 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가슴속에 떠오르는 얼굴을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한 개라고 대답한다. 비록 서로 마주 잡은 손은 차가울지언정 마음이 닿은 곳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소설속에서 데고는 누구를 싫어하고 원망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데 지쳤다고 외쳤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아주 짧은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을 읽은 사람을 더 이해하고 싶어 주저 없이 책을 폈고, 책을 덮은 후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주저 없이 책 내용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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